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Ghost in the Shell) – 비주얼만 가져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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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의 명작 공각기동대를 헐리우드에서 실사영화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불안감도 있었다. 최근 애니메이션의 실사영화 작업이 성공한 것도 있었으나 실패한 것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망한 실사영화는 캐산, 우주전함 야마토, 얏타맨등의 무리한 실사 제작영화였다. 그러나 데스노트, 간츠, 기생수와 같은 작품은 원작을 나름 잘 표현해서 원작을 훼손하지는 않은 실사영화로 볼 수 있었다.

공각기동대는 코믹북이 원작이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극장판으로 내용을 축악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더 추가하여서 코믹북보다 더 철학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초기에 저평가를 받았으나, 보면 볼 수록 일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인간의 존재에 대해 개똥철학을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 때문인 지 명작으로 칭하게 되었다. 내 경우에도 2003년에 공각기동대 원작 DVD를 살 당시 이미 10여번에 가깝게 본 상태였다. 아키라와 용호상박을 가름할 정도…

이 영화가 논란이 된 점 중에 화이트워싱이 있는 데, 이것은 정말 영화를 보면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쿠사나기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고, 스토리의 변경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새로 창조된 쿠제라는 캐릭터마저 어쩔 수 없이 화이트워싱을 해야 했고, 스토리의 개연성에서 구멍을 만들었다.

물론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나 분위기가 원작의 쿠사나기를 표현하는 데, 모자라거나 억지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바토 등의 주변 인물들의 표현도 만찢캐(만화를 찢고 나온 캐릭터)였다. 배우들의 연출은 원작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였다. 기타노 다케시의 아라마키 과장 역할은 신의 한 수라고 볼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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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애니메이션의 인상적인 부분들의 실사화에서는 칭찬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빌딩 옥상에서 침투하는 장면과 위의 장면의 격투장면등은 실사화의 최고라고 할 만하였다. 

시각화에서는 이 영화는 칭찬을 받을 만 하였다. 

단, 오시이 마모루가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인간성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대한 주제에 대해 핀트가 맞지 않는 각색이 문제였다. 원작에서 말하는 것은 기억이 인간을 정의하는 데, 기억을 갖지 못한 쿠사나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영화에는 쿠제로 나왔지만, 원작에서는 인형사로 나온 존재는 프로그램 AI이나 기억을 해킹할 수 있는 존재로 쿠사나기와 병렬연결되어 확장되는 존재이다. 이로써 인간이란 존재의 정의에 대해 심오해지는 것이 원작의 재미였다.

영화에서는 정의에 대해 2가지로 혼동하는 실수도 했다. justice와 definition 이었다. 작가가 동양에서 정의라는 발음이 유사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후반부에 메이저가 정의에 대해 2가지 단어로 말하는 것이 나왔다. 원작에서는 justice의 의미인 정의는 언급이 되지 않았다. 오직 인간 존재에 대한 정의만 말할 뿐.

화이트워싱이란 말이 안나오게 일본 소녀의 뇌를 사용한 것이 아닌 차라리 미국 소녀의 뇌를 사용한 것으로 해서 이야기의 어설픈 각색보다는 원작에 가까운 각색으로 만드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혹시 미국판 장화홍련인 안나와 알렉스가 나올 지도… (개인적으로 헐리우드에서 제대로 만든 리메이크는 오픈 유어 아이스와 나인 먼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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